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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보사의 구성원은 몇차례 변동이 있었다. 이를 도표로서 작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호수(시기)
주요 구성원 명단
창간호(1912.1) 사장 안계화, 부사장 고성삼, 총무 남창석, 서기 탁공규
재무 박대선, 발행인 문윤함, 편집인 박집초,
대리주필 이 아부라함, 기술인 정미하이루
2호(1912.3.1 ) 사장 안계화, 부사장겸 총무 고성삼, 재무 박대선, 서기 김만식,
발행인 문윤함, 편집인 박집초, 주필 이강,
기술인 정재관 황공도, 박영갑
5호(1912.8.1) 사장 안계화, 부사장겸 총무 고성삼, 재무 박대선,
서기 김만식, 발행인 문윤함, 편집인 박집초, 주필 이강
7호(1912.12.1) 사장 김인수, 부사장 배상은, 총무 고성삼, 서기 김만식
재무 문중도, 발행인 문윤함, 편집인 박집초, 주필 이강
기술인 마태호. 황공도, 이섭인, 최붕거, 장응규, 금암
8호(1914. 2.1) 사장 김인수, 부사장 배상은, 총무 고성삼, 서기 김만식,
재무 문중도, 편집인 김부인 엘리싸벳다, 발행인 문윤함, 주필 이강
기술인 마태호, 최붕거, 황공도, 장응규, 이섭인, 금암
9호(1914.3.1) 사장 김인수, 부사장 배상은, 총무 고성삼, 서기 김만식,
재무 문중도, 편집인 김 엘리싸벳다, 주필 이강, 발행인 문윤함
11호(1914.6.1) 사장 김하일, 총무 박명호, 재무겸 발행인 문윤함,
편집인 김 엘리싸벳다, 주필 이광수

주요 구성원은 크게 경영관리진과 편집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경영관리진은 사장, 부사장, 총무, 재무 등으로, 편집진은 주필, 기술인, 서기 등으로 각각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면 먼저 이들 구성원의 변동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경영관리인의 경우,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없으나 크게 3번 변동이 있었다. 창간 당시 사장에는 안계화였는데, 7호때는 김인수, 11호때는 김하일이었던 것이다. 아울러 이 시기에는 다른 경영관리인의 변동도 있었는데, 창간호시 부사장이 고성삼이었는데, 7호때는 배상은으로, 총무 역시 창간시는 남창석이었는데 7호시는 고성삼, 11호시는 박명호 등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1912년 창간시부터 1914년 6월까지(11호) 줄곧 경영을 담당한 인물도 보인다. 문윤함과 고성삼이 그 예로서, 문윤함은 창간시부터 폐간시까지 발행인이었으며, 고성삼은 창간시는 부사장, 2호부터는 부사장겸 총무, 7호부터 10호까지는 총무를 각각 담당하였다.

편집진의 경우 8호때에 가장 큰 변동이 있었다. 창간호부터 7호까지 편집인이 박집초였는데 8호부터 11호까지는 김깐쓰딴찐 신부의 어머니인 김 엘리싸벳다가 담당하였다. 이처럼 편집인이 바뀐 이유는 정교보가 반일활동으로 정간된 후 재간되는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정교보는 재간되어 김 엘리싸벳다가 편집을 담당하는 9호부터 내용이 보다 항일적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잡지의 논지를 대변하는 주필은 1호부터 10호까지는 이강이, 그리고 11호는 춘원 이광수가 담당하였다. 이로 볼 때 이강이 정교보의 주필로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시베리아총회를 관할하는 遠東專權委員으로서,

(주)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セ도산안창호자료ソ(3), p. 103 정교보의 운영 등 모든 부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주)이광수, セ나의 告白ソ, p. 89

주필 외에 정교보를 담당한 인물로는 정재관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창간호시에는 기술인으로 참여하였으나 권업회의 교육부장으로 가게 됨에 따라

(주)권업신문 1912년 12월 19일 정교보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였다.

다음에는 각 직책을 맡은 인물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교보의 특징 내지는 성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경영관리진과 편집진을 대표하는 발행인을 보기로 하자. 발행인은 1호부터 11호까지 문윤함이 담당하였다. 그는 1910년 12월 당시 치따 국민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15일耕의 농토를 갖고 있는 부자로서

(주)정교보 5호 잡보 본지방의 실업조사, p. 28 그곳에서는 감자대왕으로 불리웠다.

(주)李克魯, セ苦鬪四十年ソ, 을유문화사, 1947, p. 15 그는 11호에서는 재무직도 겸임하였는데 그의 재산이 바탕이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즉 정교보를 대표하는 발행인은 치따지역에 거주하는 토착세력이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강 등과 미주에 있는 대한인국민회를 매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경영관리진의 경우를 보도록 하자. 사장을 담당한 인물은 안계화, 김인수, 김하일 등이다. 그들은 자바이깔 지역 금광지역 출신들로서 동포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던 인물들이었던 것 같다. 안계화는 금광에서 여러 동포들을 노동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는 한편 동포들의 친목을 주장하던 사람이었다.

(주)정교보 창간호 잡보, p. 32 그는 굴을록도 금광에서 노동하는 동포 치료비로 15원을 기증하기도 하였다.

(주)정교보 창간호 잡보, p. 31 김인수는 구한국군대의 참령으로서

(주)정교보 7호 논설 알료금광래함, p. 12 1907년 고종이 폐위된 후 러시아의 후원을 얻기 위해 하바로브스크에 파견했던 인물로

(주)박보리스 드미트리예비치, ゛국권피탈전후시기 재소한인의 항일투쟁ゝ, セ수촌박영석교수화갑기념 한민족독립운동사논총ソ, 1992, p. 1068 당시에 알료금광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세례 증명서가 없어 곤란을 당하는 동포들을 위하여 이르꾸쯔크 총독에게 교섭하여 신분증명서를 발급받도록 노력한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동포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정교보, 권업신문 등에 수백원의 의연금을 내도록 유도한 인물이다.

(주)정교보 7호 논설 알료금광래함, p. 12 김하일에 대하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역시 안계화, 김인수 등과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 아닌가 한다.

부사장을 담당한 인물들 역시 러시아지역에 일찍 정착한 인물들로서 재력이 있으면서 동포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고성삼은 치따국민회 부회장(1910년 12월)이었으며,

(주)신한민보 1911년 2월 15일 회보 치따지역에서 7일경의 농토에 농사짓는 인물로

(주)정교보 5호 잡보, p. 28 이 지역의 재력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주)이광수, セ나의 告白ソ, p. 97 배상은도 우름금광의 동포로서 정교보에 기부금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주)정교보 잡보 7호, p. 21 이 지역의 재력가가 아닌가 추측된다.

총무를 담당한 인물들도 자바이깔지역의 토착세력으로서 앞서 언급한 고성삼 외에 남창석, 박명호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치따 국민회에서 일한 경험을 갖고 있다. 남창석은 1910년 12월 이전에 치따국민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주)신한민보 1911년 7월 12일 회보 고성삼은 1910년 12월 현재 치따국민회 부회장이었다.

(주)신한민보 1911년 7월 12일 회보 그리고 박명호는 1910년 12월 현재 치따국민회 서기였다.

(주)신한민보 1911년 7월 12일 회보 그들이 모두 치따국민회 출신인 점은 치따에서 정교보가 간행되고 있었고, 실제적인 역할은 총무가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재무를 담당한 인물로는 박대선, 문중도, 문윤함 등을 들 수 있다. 박대선은 정교보 창간호 기서 <참 좋은 소식이오>라는 글을 기고하기도 하였다. 문중도는 치따에 거주하고 있는 인물로 1일 반경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주)정교보 5호 잡보, p. 30 문윤함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지역의 재산가였다.

다음에는 편집진의 경우를 보자. 편집인은 박집초, 김 엘리싸벳다가 담당하였다. 박집초는 치따에서 잡화점을 운영하였으며,

(주)정교보 5호 잡보 p. 30 치따한인 정교학교에서 로어교사로서 일하였다.

(주)정교보 창간호 사시환영 치따에 오기 전에는 만주리 철도국에서 근무하면서 동포사회에 공헌한 인물이다.

(주)정교보 창간호 잡보, p. 32 김 엘리싸벳다는 사말리 출신으로, 1913년 가을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갔다가 1914년 현재 치따시 부주교 소관 외국전도회 신부로 일하고 있는 김깐스딴찐의 어머니이다.

(주)정교보 8호 잡보 한인샤회에 처음 잇는 일

주필은 이강, 이광수이다. 이 중 특히 이강이 주목된다. 그는 미주에서 1905년 에 간행된 공립신보에도 관여하였으며,

(주)최기영, ゛미주교포의 반일언론:セ공립신보ソ· セ신한민보ソ의 간행ゝ, セ대한제국시기 신문연구ソ, 일조각, 1991, p.205 1908년에 블라지보스또크으로 온 이후에는 해조신문, 대동공보 등에서도 주필을 역임하는 등 언론 활동에 많이 종사했던 인물이다.

(주)박환, ゛해조신문ソ, セ만주한인민족운동사연구ソ, 일조각, 1991, p.307, 박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간행된 민족지:セ대동공보ソ, セ한국학보ソ 73, 1993 겨울호, p.121 이광수는 1914년 초 치따에 왔다가 7,8개월간 주필로 활동하다가,

(주)이강, ゛桑港에서 海參威ゝ, セ동광ソ 26, 1931, p. 41 1914년 8월 하순에 이곳을 떠났다.

(주)이광수, セ나의 告白ソ, p. 101

그 밖에 기술인, 즉 기자로는 정미하이루(정재관), 황공도, 박영갑, 마태호(마도하), 이섭인,

(주)정교보 7호, p. 19, 29 박응규, 금암, 최붕거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정재관은 특히 주목된다. 그는 미주에서 간행된 공립신보의 주필겸 사장으로 일하였던 인물이었다.

(주)신한민보 1913년 11월 21일 논설 축본보8주년기념 그리고 1909년 러시아에 온 이후에도 대동공보에서 주필로 일하기도 하였다.

(주)セ倭政文書甲九 在露韓人關係ソ 明治四十三年 自一月至九月, 1910년 4월 29일 보고

황공도는 러시아정교회 전도사였다.

(주)정교보 창간호 축사, p. 12 그는 일찌기 미국에 3년간 유학한 인물로, 1909년 블라지보스또크로 온 이후 국민회 회원로서 자선공제회에서 일하였다.

(주)朝鮮駐箚憲兵隊司令部, セ明治四十五年六月調 露領沿海州移住鮮人の狀態ソ, p.140 박영갑 역시 1911년 10월 경 미국에서 블라지보스또크로 온 인물로 수청 지역에서 사립학교 설립에 노력하였다.

(주)위의 책, p. 120 한편 이섭인은 다년간 만주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주)정교보 4호 잡보, p. 30 황도하는 치따에서 권련제조소 노동자로 일하였고

(주)정교보 5호 잡보, p. 30 창간호 기서에 <종교와 정치>를 기술하였다.

서기는 탁공규, 김만식 등이 담당하였는데, 이들은 한때 블라지보스또크에서 활동하였던 인물들이다. 탁공규는 블라지보스또크에 있는 啓東學校 辭典고문이었으며, 하얼빈 東興學校 창립시 교장이었다.

(주)조선헌병주차사령부, 위의 책, p. 136 김만식은 역시 전에 계동학교 교사였으며 블라지보스또크에서 간행된 대동공보의 集金係에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주) 위의 책, p. 152

지금까지의 검토를 통하여 정교사의 주요 구성원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첫째, 발행인, 사장, 부사장, 재무 등은 자바이깔 지역의 재력가들로 농업, 또는 금광업에 종사하는 인물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특히 금광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인물들이 정교보사의 주된 직책을 차지하고 있는 점 또한 주목된다. 그 중에서도 7호부터는 사장 김인수, 부사장 배상은이 모두 금광거주자들이다. 이러한 점은 금광 거주자들이 정교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정교보에 금광동포들과 관련된 기사들이 다수 보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즉 2호 잡보 <울음금광 동포의 성의>, 기서 <우름삼부인>, 3호 잡보 <우름동포를 감사함>, 기서 <금광僉尊에 대하여> , 6호 논설 <우룸금광 동포를 치하함>, 기서 <우룸삼부인과 안나김씨의 기서를 유감함>, 7호 기서,<알료금광에 전왕한보사람보원정은규씨래함>, <알료금광 정달삼씨래함>, 잡보 <감하한 우름금광동포>, 8호 기서 <축하얄노슥크 금광동포>, <얄로꿈현상>, 잡보 <울우사동포를 모범하라>, 9호 잡보 <나선이 금광에 사회>, 10호 교회통신 <우륨금광 동포의 믿음> 등이 그것이다.

둘째, 총무는 치따국민회 출신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고성삼, 남창석, 박명호 등이 그러하다. 이들은 국민회 부회장, 서기 등의 주요 직책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총무를 치따국민회원들이 담당하고 있는 것은 정교보의 간행이 치따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치따국민회가 정교보간행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째, 서기, 편집인 등은 러시아 지역의 토착지식인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으며, 넷째, 주필, 기술인 중에는 미국에서 활동하던 인물들이 다수 보이고 있다. 이강, 정재관, 황공도, 박영갑 등은 모두 미국 공립협회, 국민회, 대한인국민회 등에서 활동하다 블라지보스또크로 온 인물들이다. 이점은 시베리아 총회의 본부인 대한인국민회의 중앙본부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대한인국민회라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하겠다.

다섯째, 편집실에서 일하는 인물들 가운데는 이전에 언론계에서 활동한 인물들이 다수였다. 이강, 정재관, 김만식 등이 그들이다. 이강은 공립신보, 해조신문, 대동공보 등에서, 정재관은 공립신보, 대동공보에서, 김만식은 대동공보에서 각각 활동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경험은 정교보를 제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정교보의 경영관리진에는 치따 및 그 주변 지역에 원래부터 거주하고 있던 재러동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주필 기자 등에는 외부 즉 미국에서 온 인물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하겠다. 정교보사의 이러한 인적구성은 정교보의 내용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즉 토착세력은 독립운동의 전개와 관련하여 재러동포들의 현실적인 이익을 보다 강조하는 입장을 보였을 것이고, 외부세력은 미주 대한인국민회의 목적을 자바이깔 지역 재러동포들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려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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