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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단상>

새로운 주제를 꿈꾸며-만주로의 회귀와 지역사, 유학사

박 환(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1. 큰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따르며

2008년은 필자가 만 50세가 되는 해이다. 특히 9월이 그러하다. 생일이 추석날이기 때문이다. 나이 50이면 한번 쯤 자신의 길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학계에서는 아직도 소장학자로 불리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이제 중년 나아가 노년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비록 50의 나이지만 운이 좋게도 약관의 나이인 20대 후반(1986년)부터 대학 강단에 섰으니 대학교수생활이 벌써 20여 년째이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학문세계를 논하는 것은 원로학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분들의 학문세계를 엿보며 나의 공부 방향에 대하여 고민하고 생각해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오늘 부족한 나의 연구 단상에 대하여 간단히 논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확인해보고 필자의 연구행로에 여러분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동료 선학 후배님들의 많은 질정을 바란다. 그리고 비록 젊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많은 분들이 저처럼 연구에 대하여 논하는 자리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1) 부친의 영향으로 역사학에 입문

만주지역에 대한 관심은 부친이신 박영석 교수(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건국대교수)로부터 받았다. 부친은 퇴근 후 항상 우리들을 모아놓고 하루일과를 말씀하시고 자신이 공부하는 내용을 재미있게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시곤 하였다. 우리 형제들이 역사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만주 대륙은 어려서부터 하도 많이 들어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나의 꿈은 대륙을 누비는 것이기도 하였다. 1990년 처음 만주벌판을 답사하였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당시 나는 연변지역의 최홍빈 교수와 젊은 학자인 김춘선, 유병호, 김태국 등과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하였다.

부친은 만주지역 한인독립운동사를 공부하면서 중국사, 일본사, 러시아사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셨다. 부친의 이러한 학문적 경향은 막내 동생인 박강 교수(부산외대)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동생의 대표적 저술은 ‘중일전쟁과 아편’(지식산업사, 1995) 등이다. 필자 역시 부친처럼 한국의 주변국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사를 이해하고 싶다. 그래서 인지 일찍부터 동양사, 서양사 전공자와 교류를 갖고 싶어 했고, 또한 한국민족운동사학회의 발표 등에서도 이들 전공자와의 유대를 강조해 왔다.

부친은 항상 한문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 필자가 일제시대 유학사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셨던 것 같다. 부친의 뜻에 따라 서강대에 입학한 후 처음에는 철학과를 지망하고자 하였으나 둔재임을 자각하고 포기하고 사학을 전공으로 철학을 부전공으로 택하였다. 필자는 부친의 뜻대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한문공부를 하였다. 조부님과 동학이신 우인(조규철)어른께 한문을 공부하러 돈암동 댁을 찾아뵌 기억이 난다. 선생께서는 민족문화추진회를 추천해 주셨고, 그 후 동초 이진영 선생님 등 여러 한학자들로부터 한문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기억에 남는 것은 신호열 선생님으로부터 시경을 배우던 시절이다. 얼마나 시경을 감칠맛 나게 잘 설명해주시던지 필자 역시 강의를 하면 앞으로 그렇게 해야 하겠구나 결심하기도 하였다. 60세 이후에는 일제하 경상도지역 유학사를 정리해보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이다.

부친은 부지런하신 분이다. 지금은 병중이시지만 하루 7-8시간은 책상에 앉아 연구를 하고 계신다. 공부가 건강을 해치실까봐 걱정이다. 부친은 필자가 어린시절부터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 학문에 몰두하셨다.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 보면 새벽에도 공부에 열중하시던 부친을 목도해 왔다. 필자가 부족하지만 새벽형 인간으로 부지런한 것은 모두가 부친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아울러 자식들에게 여행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며 일찍부터 외국기행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또한 답사를 다니시면 항상 기행기를 쓰셨다. 신문에도 발표하시고, 기고한 글들을 묶어 책으로 출간하시기도 하였다. 부친의 이러한 습관은 고스란히 필자에게도 이어졌다. 부친은 항상 자신의 글은 묶어 놓아야지 흩어지면 찾을 수 없게 된다고 하시면서 책으로 간행할 것을 권하시었다. 필자가 다작?의 연구자가 된 것은 이러한 연유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필자는 부친의 정서와 학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첫 제자가 아닌가 종종 생각하게 된다.

 

2) 은사님들의 소중한 가르침

러시아에 대한 관심은 서울대 교수였던 고 김철준교수의 가르침에 의해 확고해졌다. 대학 1학년 때 부친의 심부름으로 서울대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선생께서는 필자에게 러시아어와 러시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선생의 가르침은 항상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1992년 1월 러시아를 기행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나는 자비로 이 여행에 동행하였고, 처음으로 하바로브스크, 이르크츠크, 모스크바, 상트피터스부르크, 카자흐스탄 알마아타 등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을 방문하였다. 붕괴되는 구소련을 답사한 것은 역사학자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그 후 1995년에 고려학술문화재단(이사장 장치혁)의 후원으로 러시아 연해주 및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을 답사하게 되어 이 분야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 후 지금은 생사를 알 수 없는 고려인 문와짐,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있던 유영대 고합지사장, 극동대학교의 양대령교수, 현대호텔의 남상무 사장 등의 후의로 이 분야 연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다. 특히 보훈신문사 노경래 기자는 사진 부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러시아에 대한 관심은 만주지역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출발하였다. 이제 만주지역으로 연구 관심을 돌릴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1990년대 초에 연구 분야를 러시아로 옮긴 것은 만주지역 자료를 보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어 연구에 제약이 많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1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 중국 당안 자료들도 자유로이 볼 수 있고, 만주지역 항일운동을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북한 방문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세월이 흘러 중국 당안도 많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북측의 방문 역시 일정 부분 가능해져, 몇 년 전 백두산 항일 전적지 등 북한지역에 위치한 유적지들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아울러 북측 학자들과 만주지역 항일전적지들을 공동답사할 기회도 있었다. 이제 주변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본격적인 만주지역 연구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내년 초 만주지역 독립운동에 대한 저서를 간행한 후 본격적으로 연구에 정진하려고 한다.

학문적 방법론은 서강대 은사이신 이기백, 이광린교수로부터 큰 은덕을 입었다. 두 원로교수님으로부터는 민족과 진리, 미시사, 생활사, 인간사 및 문헌고증학적 방법론을 배웠다. 항상 새로운 것을 발표하도록 격려하셨던 이기백 선생님의 수업은 ‘고문’ 그 자체였다. 새벽녘에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책상에 앉은 것 역시 헤아릴 수 없으며, 선생님의 싸늘한 눈빛이 보이는 악몽을 얼마나 많이 꾸었는지 모른다. 이광린 선생님의 제자 사랑은 준엄함 그 자체였다. 선생님의 부지런함과 담백함은 아직도 나의 몸에 그대로 체득되어 있다. 선생님처럼 필자도 일찍 출근하여 책상머리에 않아 있다. 대학시절 아침 일찍 학교 교정에 들어서면 항상 인문대 선생님의 연구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차하순 선생님은 석사생 이상은 모두 프로라며 프로근성을 갖도록 질책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직도 열심히 학문에 정진하는 선생님의 소식을 간간히 듣고 학문적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선생님의 해맑고 천진스러운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학자의 학문적 즐거움은 그런 것인가 보다. 홍승기교수로부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애정이 담긴 철저한 지도를 받았다.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필자의 영원한 스승이시다. 무엇보다도 홍 선생님으로부터 제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학문에 대한 열정을 배웠다.

구술의 중요성은 일찍부터 부친을 통하여 배웠으며, 사진의 촬영 및 필요성에 대하여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인 최광식 교수로부터 큰 교시를 받았다. 1990년 최광식교수(당시 대구 효성여대교수)와의 만주 지역 답사 시 그는 세 대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촬영에 분주하였다. 당시의 충격과 조언은 지금도 생생하다. 대학원 재학 시 학설이 있는 학자가 될 것을 강조하신 고려대 강만길 교수와의 만남 역시 실사구시적 학문 및 미시사에 치우쳐 있는 필자에게 항상 큰 가르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동료인 노경채 교수와의 만남 역시 큰 행운이었다. 선이 굵은 그의 연구와 와우리에서의 수많은 대화는 나의 학문 발전에 스승으로 위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동안 여러 큰 스승님들로부터 소중한 가르침을 받아왔지만 이를 실천하는 것은 필자의 몫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주옥같은 말씀들을 실천에 옮기고 싶다.

 

대학원 제자가 별로 없는 수도권대학 교수로서의 단점을 필자는 학회활동을 통하여 보완하고자 하였다. 한국민족운동사학회의 경우 필자에게는 삶의 또 다른 현장이었다. 수많은 학문적 동지들과의 만남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깨어나 있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앞으로도 학회를 분신처럼 생각하고 보다 발전하는 학회로 만들어가고 싶다.

 

 

2. 졸작들의 행진

 

필자는 지금까지 국내외지역의 독립운동사를 중심으로 연구하여 왔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만주, 러시아지역 등 해외 한인독립운동과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경기도지역의 항일운동사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념적으로는 민족주의, 아나키즘 등에 주목하였다. 여러 책 중 특별히 애정이 가는 저서는 '경기지역 3 1독립운동사'(선인, 2007)와 '러시아지역 한인민족운동사'(탐구당, 1995) 그리고 만주 러시아지역의 답사기들이다. 이 책들은 그 분야의 개척적인 연구서 및 답사기로써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중앙사보다는 지역사, 운동사보다는 생활사, 가족사, 사진 등 문화콘텐츠, 유학사 등에 관심을 기울여보고자 한다.

 

1) 첫 저서의 출간: '만주한인민족운동사연구'(1991)

부친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만주를 동경하던 필자는 1990년 여름 서강대학교에서 만주지역의 항일독립운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결과물로서 '만주한인민족운동사연구'(일조각, 1991)를 간행하였다. 이 저서는 1919년 삼일운동이후 만주지역에서 전개된 항일운동을 천착한 것이다. 이 책의 특징은 인물들을 다양한 기준을 통하여 분석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집단전기학을 최초로 근현대사에 적용한 저술이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만주지역의 항일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여러 편의 논고를 발표하였다. 후속 논문들을 정리하여 만주지역에 대한 단행본을 구상하고 있다. '만주지역 항일독립운동과 한인의 삶'(가제, 2009년도 간행예정)

2) 시베리아에 대한 동경(1991-현재)

만주지역 항일운동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접한 러시아지역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욱이 앞으로 만주지역에 대한 연구를 보다 심도 있게 하기 위해서도 러시아지역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1992년 러시아 탐방이후 본인의 연구는 러시아지역에 집중되었다. 그 첫 결과물이 '러시아한인민족운동사'(탐구당, 1995)이다. 본서는 러시아지역 한인민족운동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저서일 것이다.

본서를 간행하기 위하여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했던 기억들이 새롭다. 해조신문, 대동공보 등 새로운 자료를 보는 감동은 신대륙 발견 이상의 것임을 누구나 다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재소한인민족운동사'(국학자료원, 1998), '러시아지역 한인언론과 민족운동'(경인출판사, 2008) 등을 연이어 간행하였다. 현재에는 '러시아 조선인민회와 친일파' 등의 간행을 준비하고 있다

 

3) 만주 시베리아 대륙 답사의 감동: 답사록 간행(1991-2008)

만주, 러시아지역에 대한 이해는 문헌자료를 중심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본인은 만주와 러시아지역에 대한 수차례의 답사 및 자료수집 여행을 하였다. 그 결과물을 토대로 연구 결과를 보다 풍성하게 하고자 하였다. 답사여행은 단지 여행으로 그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답사를 하지 못한 분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만주지역 항일독립운동답사기'(국학자료원, 2001), '박환의 항일유적과 함께 하는 러시아기행'(1.2))국학자료원, 2002) 등은 그러한 생각에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이들 저서는 몇몇 학자들의 단편적인 여행기를 제외하면 만주, 러시아지역을 따로 나누어 한국 측에서 저술한 본격적인 답사기라고 생각된다. 최근에는 지역별로 보다 체계적이고 시각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이들 책자의 개정판 작업에 착수하였다. '박환교수의 러시아한인유적답사기'(국학자료원, 2008)는 이미 출간되었고, '박환교수의 만주한인유적답사기'는 조만간 간행될 예정이다. 앞으로 이러한 책을 바탕으로 하여 역사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답사에 참여하고 싶다.

 

4) 잊혀진 대륙의 혁명가들에 대한 애정(1991-현재)

만주, 러시아지역을 다루면서 그 지역에서 활동했던 인간들에 주목하였다. 그들이 결국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물로서 '나철 김교헌 윤세복'(동아일보사, 1992), '대륙으로 간 혁명가들'(국학자료원, 2003), '잊혀진 혁명가 정이형'(국학자료원, 2004), '시베리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역사공간, 2008)이란 책이 발간되었다. 이 책들은 인간에 주목하면서 논문을 보다 일반인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도에서 간행한 것이다. 앞으로도 이들 다양한 인간상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항일운동을 연구하다보니 항일과 친일의 이분법 때문에 역사속의 다양한 인간들을 올바로 살펴보지 못한 것 같다. 이를 위해 '김좌진 장군 평전', '김경천 장군 평전', '러시아지역 한인민족운동가와 민족운동' 등을 준비하고 있다.

 

5) 시대적 분위기에서의 방황과 자아의 실현:한인아나키즘운동 연구(1991-2004)

1970, 80년대를 살아오면서 어느 한편에 서기를 강요받은 느낌이 크다. 결국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본인으로 하여금 아나키즘에 관심을 갖도록 하였다. 아나키즘의 주체적 자주적 성격, 비조직적 성향은 자연히 역사속의 아나키즘에 심취하도록 하였다. 특히 아나키즘 이론가인 하기락선생, 관서흑우회의 중심인물이었던 현장 노동자 겸 이론가 최갑룡선생, 만주지역 아나키스트였던 이강훈 선생님 등과의 만남은 이 분야 연구에 더욱 매진하도록 하였다. 최갑룡선생의 경우 '한국아나키즘운동사'를 저술한 인물인데 그가 작고한 후, 그 때의 인연으로 모든 자료를 수원대 도서관에 기증하였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셨지만 이들 운동가들과의 만남은 운동가들의 논리들을 생생하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인 아나키즘에 대한 여러 편의 논고를 집필하였고, 그 결과물을 '식민지시대 한인아나키즘운동사'(선인, 2004)로 간행하였다.

오늘날까지 필자가 공동연구를 꺼려하고 자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은 아나키즘적 분위기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6) “수원유생”과 지역사 연구(1995-현재)

1986년 수원대에 부임한 이후 이 다음에 묘비에 수원유생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생활하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나른하고 피곤할 때면 학교주변의 역사유적지와 바닷가들을 자주 돌아다니며 자료들과 사진들을 수집하곤 하였다. 만주 시베리아 대륙을 다니는 필자에게 수원, 화성은 아기자기한 장난감 같은 곳이기도 하였다.

1995년부터 경기도지역사 연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1995년은 광복 50주년을 맞이한 해로써 각 지역마다 자신의 정체성 확보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었다.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수원대학교에 봉직하고 있는 본인으로서는 지역사회에도 봉사해야 한다는 인식을 평소에 갖고 있었다. 더구나 벌써 지역대학에 재직한지도 2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역에 대한 연구는 수원지역에서부터 시작되어 화성, 용인, 안성, 인천지역에 까지 확대되었다.

그 결과물이 '경지지역 3.1독립운동사'(선인, 2007)이다. 공저로 '화성 화수리 고주리 삼일운동 유적 실태조사보고서'(2002), '화성지역 삼일운동 유적지 실태조사보고서'(2004), '화성지역 3.1운동과 항일영웅들'(2005) '화성출신 독립운동가'(2006) 등을 출간하였다. 2009년에는 삼일운동 90주년을 맞이하여 '화성지역 삼일운동 답사기 및 증언록'을 간행할 예정이다. 이들 지역사에 대한 연구는 경기지역사에 대한 개척적인 연구성과들이다. 지역사에 대한 관심은 안동대학교의 김희곤 교수로부터 많은 시사점을 얻었으며, 수원박물관의 한동민선생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7) 새로운 돌파구 사진(2005-현재)

어렸을 때부터 사진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초등학교시절에도 사진기를 들고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있다. 특히 부친은 일찍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으셨다. 아사이펜탁스 등 좋은 사진기들을 많이 갖고 계셨으며,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실 때에는 인화기를 집에 설치하고 피피톨 등을 이용하여 사진을 인화하시기도 하였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필자도 일찍부터 사진을 배우고 싶었다.

'러시아지역 항일독립운동가 추모특별기획전-시베리아의 항일영웅들'(국가보훈처, 2003) '사진으로 본 근대화성의 옛 모습'(화성시, 2005) 등은 그러한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최근에는 '식민지시대 화성지역 교육관련 자료집 및 사진집'을 준비하고 있다.

나의 꿈은 만주 러시아 및 경기도지역에 대한 사진아카이브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문화콘텐츠 부분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아울러 다른 학문분야 학자들과도 유기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

 

8) 잔잔한 재미를 주는 기획 전시(2005-현재)

근현대 계통의 박물관을 방문하면 가끔 역사적 내용과 다른 설명문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이에 필자는 이점들을 수정해 보고 싶었다. 방법은 전공학자들이 사진 및 자료를 제공하고 이에 대한 설명문을 작성하는 것이다.

'인천 계양구 3ㆍ1운동 전시자료 수집 보고서'(2004), '중국 흑룡강성 한중우의공원 전시자료 수집보고서'(2005), '러시아 한인독립운동 기념관 전시자료 수집보고서'(2008) 등은 이러한 생각에서 작성된 것들이다.

만주 흑룡강성 해림에 지어진 한중우의공원 내 전시관을 가보면 가슴 뭉클하다. 조규태교수와 황민호교수의 도움이 컸다. 러시아지역 독립운동기념관은 2009년 초에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완공될 예정으로 있다

 

3. 러시아 한인 언론 100년사의 최초 정리: '러시아지역 한인언론과 민족운동'(경인문화사, 2008)

올해 2008년은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간행된 한글신문 '해조신문'의 창간 100주년이고, 사회주의 신문 '선봉'의 창간 85주년인 뜻 깊은 해이다. 이에 어둡고 암울했던 시절, 우리 동포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였던 러시아지역 한인언론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지금까지 소외되고 잊혀졌던 한국언론사의 한 부분을 복원시킨다는 차원에서 일차적으로 그 의미가 크다. 아울러 러시아지역 한인의 역사와 한국 근현대사의 복원 그리고 한민족 공동체의 형성과 한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서도 그러하다.

본서는 구한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지역에서 간행된 한글신문들을 민족운동의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하여 모두 6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에서는 구한말 블라디보스톡에서 간행된 최초의 한글 신문인 해조신문과 안중근 의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대동공보를 살펴보았다. 구한말의 한인언론은 이 지역의 의병활동과 안중근 의거 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2장에서는 신채호, 이상설, 장도빈 등이 주필이었던 권업회의 기관지인 권업신문과 이강과 춘원 이광수 등이 주필이었고, 치타에서 간행된 대한인국민회 시베리아지방총회의 기관지인 대한인정교보 등을 다루었다. 이들 언론들은 1910년대 국내외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러시아지역 한인독립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던 점에서 각별히 주목된다.

3장에서는 러시아 혁명기의 한인언론을 다루었다. 『청구신보』, 『한인신보』, 『국민성』, 『자유보』, 『동아공산』, 『붉은긔』, 『새세계』, 『신생활』, 『로동쟈』 등이 그것이다. 『청구신보』와 『한인신보』에서는 러시아 혁명기 한인들의 진로에 대한 고뇌를 읽을 수 있으며, 『국민성』, 『붉은긔』 등에서는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한인들의 가열찬 투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들 중 『국민성』, 『자유보』, 『신생활』, 『새세계』 등은 이번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으로 신선감을 더해줄 것이다.

4장에서는 러시아 혁명이후의 한글 신문으로 『선봉』을 비롯하여 『연해주어부』, 『광부』, 『당교육』, 『동방꼼무』나, 『공격대원』, 『쓰딸린녜츠』, 『레닌광선』 등을, 잡지로는 '말과 칼', 『앞으로』 등을 살펴보았다. 이 중 『선봉』은 올해 창간 85주년을 맞는 가장 오랫동안 간행된 신문이다. 러시아혁명이후 사회주의체제로 편입되어 가는 한인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5장에서는 1937년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 후 그곳에서 간행된 대표적인 신문인 『레닌기치』와 그 후신인 『고려일보』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전자는 중앙아시아에서 스탈린 체제하에 살고 있던 한인들의 이해에 도움을 주며, 후자에서는 개혁개방 이후 새로운 체제로 적응해가는 한인들의 생동감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본장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새로이 발간된 『고려신문』, 러시아에서 간행되고 있는 『러시아고려인』, 『겨레일보』, 『새고려신문』 등에 대하여도 알아보았다.

6장에서는 러시아지역 한인언론의 성격을 시기별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구한말과 러시아혁명 이전에는 국권의 회복과 조선의 독립, 러시아 혁명기에는 조선의 독립과 새로운 이상사회 건설, 혁명 이후에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 1937년 강제이주 후에는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 유지 및 정책적 지도에 대한 협조 그리고 1991년 구소련 몰락 이후에는 한인들의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한 개혁 개방의 노력들이 신문에 잘 나타나 있다.

본서에서는 러시아 한인언론 100년사를 다루면서 주로 한인들의 민족운동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항일독립운동 시기인 구한말부터 1922년 러시아 내전이 끝나는 시기까지에 더욱 비중을 두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 결과 연해주 지역의 의병활동, 안중근의거, 성명회, 13도의군, 애국계몽운동, 권업회, 대한인국민회 시베리아지방총회 등 이 지역의 독립운동을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민족운동에 주목한 결과 한인들의 이민, 일상 생활사, 문화, 러시아의 대한인정책 등 다양한 부분들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였다.

본서의 간행을 통하여 러시아지역 한인언론의 전체상이 어느 정도 개략적이나마 체계화된 만큼 앞으로 이를 토대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한인들의 삶의 모습들을 보다 다양하고 심도 있게 밝힐 것을 다짐해 본다.

 

4. 수원유생의 바람과 희망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본인은 만주, 러시아지역의 한인민족운동, 독립운동가들, 한인아나키즘운동, 경기도지역 항일민족운동 등 식민지시대 국내외 독립운동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얼핏 보면 다양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인민족운동을 입체적으로 살피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작업들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에는 본인의 연구 성과를 점검해보고 앞으로의 연구방향을 검토하기 위해 '20세기 한국근현대사 연구현황과 쟁점'(국학자료원, 2001)이란 졸저를 간행하였다.

약 2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발간한 졸저들을 검토해 볼 때 만주, 러시아지역의 항일민족운동과 해외 아나키즘운동 등 미개척분야에 도전장을 내어 조금이나마 견인차 역할을 한 것 같다. 앞으로의 연구 역시 이러한 연구들을 토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나의 고향은 경북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 산골이다. 어려서 태어나 대구로, 서울로 이사를 와 고향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지만 장남이라는 무게 때문인지 일찍부터 애착을 가져왔다. 작년 9월에는 경북 청도지역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학술회의도 개최하였고, 고향에 대한 글을 써보기도 한 것은 큰 보람이었다.

2005년의 상처는 가족사와 조상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도록 하였다. 그 결과 '훨훨 바람이 되어 날고 싶어 했던 당신-장은미 추모집'(2005), '경북 청도 수야와 가족이야기-할머니 탄신 100주년 기념'(중산 박장현기념사업회, 2006) 등의 책들을 비매품으로 간행하였다. 앞으로 조부의 문집인 '중산전서'의 번역 발간 연구에 관심을 기울일 예정이다. 아울러 집안에 남아 있는 조부 관련 자료들과 만주지역 관련 자료, 아나키즘관련자료, 경기도 관련 자료, 청도지역자료들을 정리하는 데 매진할까 생각하고 있다,

퇴직 후에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박환교수와 함께하는 러시아, 만주, 화성, 경북 청도” 등의 문화유적 해설사로 일하고 싶다.

 

필자는 다른 분들과 달리 역사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3대에 걸쳐 역사학을 하고 있고 누님과 동생들도 나의 딸 역시 역사학을 하고 있다. 역사학이 가학이라는 이 부분은 항상 나에게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무엇인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조금 더 남에게 양보하고, 학자들 간에 동지로서의 이해심과 유대감을 갖는 것이 그 첩경이 아닐까 한다.

 

 


  1. 나의 책을 말한다-새로운 주제를 꿈꾸며-만주로의 회귀와 지역사, 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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