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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528077


◆ 매경 블라디보스토크포럼 / 문화탐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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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환 수원대 교수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공화국 극동지방 남동쪽 끝에 있는 연해주의 중심도시다. 동해에 면해 있으며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 반도의 남단, 금각만 연안에 위치한 도시로서 태평양 방면에서 이 나라 굴지의 항만도시다. 항구는 11월부터 3월까지 결빙하지만 쇄빙선을 이용해 겨울에도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도시의 이름은 "동방(보스토크)을 정복하자(블라디)"라는 러시아어에서 유래한다. 중국명은 하이첸웨이다. 1860년에 러시아 해군기지로 개항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러시아 극동정책이 활발해짐에 따라 경제적, 군사적으로 그 중요성이 높아졌다. 1903년에 시베리아 철도의 개통으로 러시아 중심부와 육로로 직결되면서 철도의 종점으로서 국제적 의의도 높아졌다. 또 19세기 말에 동방연구소가 개설돼 문화적 중심지가 되기도 하였다. 혁명운동사에서도 1905~1907년에 제1차 러시아 혁명기에 군대 반란이 여러 차례 일어났으며, 1917년 10월 혁명 때에는 재빨리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하는 등 시베리아, 극동 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한국 독립운동사와 관련해서도 한국 독립운동의 최대 근거지 가운데 하나였다. 

◆ 조국 광복 꿈 담은 해양공원 

구한말 안중근, 장지연, 이위종 등 수많은 항일운동가들이 조국의 광복을 꿈꾸며 치열한 고민을 했던 현장.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주민들이 주로 찾는 해양공원이 있다. 최근 공원이 잘 단장되어 많은 시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그런데 사실 이 지역은 1870년대 한인들이 최초로 이주한 개척리 일대이며, 항일 운동가들이 조국의 독립을 꿈꾸며 치열한 고민을 했던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1870년대부터 한인이 점차 집중하기 시작해 1886년에 400명, 1891년에는 840여 명에 이르렀다. 한인 인구가 늘어가자, 시 당국에서는 1893년 한인들만 집단으로 거주하도록 하는 구역을 설정했다. ’카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한인촌)’ 혹은 ’개척리’라 부르던 이 지역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신한촌 성립 이전 한인집단 거주지로 비교적 시내 중심지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의 명칭은 뽀그라니치나야(Пограничная). 1905년 이후부터 1910년까지 국권회복운동의 거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 블라디보스토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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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역

코노발로프가 설계한 블라디보스토크역은 1907~1912년에 건설되었으며, 시베리아 횡단철도 9288㎞의 종착역이다. 역사의 외관은 러시아의 전통예술 양식으로 장식한 엷은 녹색 석조건물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역은 수많은 한인들의 애환이 서린 역이다. 이곳은 1937년 한인들이 강제이주를 당했던 열차역이자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또는 국내로부터 수시로 이동했던 역이기도 하다. 

특히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의 처단을 위해서 이곳에서 우덕순 동지와 함께 하얼빈으로 출발했던 대장정의 시발역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역은 하얼빈으로 출발하던 안중근 의사의 비장한 결심을 엿볼 수 있는 생동감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 독립운동 대부 최재형의 집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우수리스크에는 안중근 의사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준 시베리아 한인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우는 최재형의 집이 남아 있어 주목을 끈다. 최재형은 함북 경원의 노비 출신으로서 1860년대에 경제적인 이유로 러시아 연해주로 도주해 1880년대 러시아에 귀화한 뒤, 그 지역의 군수 및 자산가로 성장해 재러한인사회를 이끈 대표적인 지도자였다. 1905년 이후 적극적으로 항일투쟁에 참여했다. 3ㆍ1운동 이후 상하이에서 성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총장에 임명되기에 이르렀다. 

1920년 시베리아에 출병한 일본군에게 처형될 때까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최재형이 1920년 4월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갔던 집이 있는 우수리스크시 보로다르스카야 38번지에는 한ㆍ러수교 20주년을 맞이해 한국과 러시아 정부가 공동으로 세운 기념판이 부착되어 있다. 

◆ 항일독립운동 성지 신한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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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촌 항일독립운동 기념탑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리 역사와 관련해 일차적으로 주목되는 곳은 신한촌지역 항일독립운동 기념탑이다. 이 기념탑은 러시아지역에서 전개된 항일독립운동을 선양하기 위해 그 대표적인 근거지인 신한촌 하바롭스크 거리에 건립한 것이다. 건립 주체는 사단법인 해외한민족연구소이며, 설립일은 1999년 8월 15일이다. 

신한촌은 한인독립운동의 기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러시아 지역의 한인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권업회, 권업신문, 대한광복군정부, 한인신보사, 일세당, 대한국민의회. 노인동맹단 등이 이곳에 있었으며, 이동휘 등 수많은 한인 애국지사들이 신한촌에 거주하며 활동했다. 또한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의 3ㆍ1운동이 이곳을 시발점으로 하여 이루어졌으며, 한민학교 등 신한촌에서 수많은 독립운동 계획들이 수립되기도 했다. 1937년 극동 한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로 신한촌이 폐쇄될 때까지 신한촌에서의 한인 활동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현재는 대규모 아파트 밀집지역으로 변모해 과거 한인의 거주 흔적은 찾기가 어렵다. 

◆ 헤이그 밀사 이상설 기념비 

헤이그밀사의 1인이며, 만주 용정에서 민족학교인 서전서숙을 설립했고 권업회 등에서 활동한 러시아지역의 대표적인 항일운동가 이상설의 기념비가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우수리스크 수이푼 강 유역에 설치되어 있다. 

이상설은 1917년 3월 2일 48세의 일기로 작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겼다.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룩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고국에 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원고는 모두 불태우고 그 재마저 바다에 날린 후에 제사도 지내지 마라." 

◆ 산운 장도빈 발해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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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스베틀란스카야 대로의 중심에 위치한 혁명광장.

우수리스크시 레르몬토프거리에는 산운 장도빈(1888~1963) 선생의 발해(698~926) 유적 연구 100주년을 기념해 2012년 기념비가 세워졌다. 장도빈은 구한말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1911년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해 블라디보스토크 권업신문의 주필로서 일본의 강점으로부터 한국의 해방을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사학자이자 사회평론가, 교육자였던 선생은 1912년 10월 우수리스크 부근에서 한국인 처음으로 고대건물 주춧돌을 조사하고 이것이 발해 절터의 유적임을 추정했다. 고려학술문화재단(설립자 장치혁) 대표단은 선생의 유지에 따라 1992년 6월 우수리스크를 방문해 선생께서 답사하신 역사적 기념물을 탐방하였다. 

2005년에 극동국립대학교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공동으로 발해연구소를 설립해 연해주 일대의 발해유적 및 고고학적 기념물 조성에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 독수리 전망대 

독수리 전망대는 금각만과 시코트 반도가 바라보이는 높이 약 120m의 언덕에 위치한다. 관람객은 푸시킨스카야 거리에서 전망대로 가는 단거리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전망대에는 러시아어를 만든 한국의 세종대왕과 비견되는 두 형제 신부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최근에는 이곳에서 사랑을 약속하면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열쇠를 부착하는 것이 유행이다. 한번쯤 시도해볼 만한 일이다. 한국에서 자물쇠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 혁명광장 

혁명광장은 블라디보스토크 스베틀란스카야 대로의 중심에 위치한다.
 중앙에는 소비에트 정권 수립을 위해 싸운 병사들을 기념하는 동상이 있다. 왼쪽으로는 벨르이돔(White House)이라 불리는 연해(Primorskiy) 지방 주정부 종합청사가 위치한다. 

전승기념일 5월 9일에는 각종 퍼레이드와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금요일에는 각종 소비제품의 장터가 열린다. 

[박환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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